총평
수사학이래서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인간 본성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연설, 즉 설득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과 행위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고, 특정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감정에 매몰되어 나를 잊게 될 때 마다 들춰보면 좋을 것 같다. 인간의 감정이 한낱 부질없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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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성격
자기를 입증하는 것과는 별도로 남이 나를 믿게 하려면 현명함, 미덕, 선의가 필요하다.
분노
언젠가는 복수하리라는 기대가 있기에 모든 분노에는 즐거움이 뒤따른다.
분노에는 즐거움이 수반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다.
수치심
수치심이란 자신이 연루된 어떤 나쁜 짓 때문에 현재나 과거 혹은 미래의 자신에게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불명예와 관련해서 생기는 괴로움 또는 불안감이고, …
사람을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 누군가의 좋은 점은 지나치게 칭찬하지만 나쁜 점에는 침묵하는 것, 누군가의 면전에서 그의 슬픔을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 그 밖에도 그런 비슷한 행위는 아첨의 증표이므로 수치심을 가져온다.
아첨이 수치심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더 나아가 사람을 면전에서 칭찬하거나 그의 감정에 지나치게 공감하는 것 또한 아첨의 증표이고, 곧 수치심을 가져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그들이 대단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 우리가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자들, 우리가 닮고 싶은 자들, 우리가 그 생각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자들이 우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신경 쓰고, 그런 자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아름다운 문장이다. 이토록 긴 나열을 흥미진진하게 읽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의분
사람이라면 부당하게 불행한 일을 겪는 자와는 함께 괴로워하며 연민을 느끼고, 부당하게 잘되는 자에 대해서는 의분을 느끼는 것이 마땅한 데, 그러한 부당함은 불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의분을 신들의 감정이라고 여긴다.
시기 없는 의분이 과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인가 싶다. 괜히 신들의 감정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 듯 하다.
청년기
청년은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다. 그들이 모든 것을 지나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다는 착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구절.
청년은 웃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지와 재치를 좋아한다. 기지와 재치는 우월감을 세련되게 표출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청년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우월감이다.
노년기
노인은 자기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 아무것도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다.
금언
금언은 연설에 큰 도움을 준다. 그중 한 가지 이유는 청중에게는 속물근성이 있어서, 다신이 어떤 특정한 일을 겪으면서 갖게 된 단편적인 생각을 누군가가 일반화해서 말해주면 좋아하기 때문이다.
생략삼단논법
유식한 자들은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것을 말하는 반면에, 무식한 자들은 자기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과 삶에서 피부에 와닿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많이 배울수록 생각에 색채를 담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배움이란, 내 색채를 만든다기 보다 일반적인 원리를 확립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배움의 과정 속에서 나만의 독창성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같이 걸출한 기업을 만들어낸 천재들이 대학을 중퇴하는 걸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