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한국에서의 첫 직장에서 가장 깊이 마음을 나눴던 동료에게 추천받아 이 책을 읽게되었다. 그 곳, 그 직장은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IT 기업 특유의 자유로움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압존법 강요와 같은 적잖은 꼰대문화도 있었다. 게다가 출신국가가 다른 동료도 몇 있었고, 설령 국적이 같더라도 저마다의 배경과 문화적 차이가 크게 도드라졌다.
원래 대화란 모름지기 주어진 상황을 서로 비슷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 게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그 당연한 전제조차 성립하기 어려웠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도 상황을 보는 관점,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기저에 깔린 생각부터가 너무 다르다 보니, 결국 엉뚱한 결론으로 치닫거나 서로에게 공감만을 갈구 채 어정쩡하게 대화가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마음 맞는 동료를 찾기란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이 책을 소개해준 그가 유일하게 마음이 맞는 동료였다. 소속 팀이 달라 아쉽게도 기술적인 교류는 하지 못했지만, 그는 내게 좋은 인생 선배였다. 대화를 나누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당시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머지않아 찾아올 ‘예정된 슬픔’을 준비하는 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된 듯했다.
총평
일화의 나열로 구성된 책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화로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교훈까지 독자를 설득하며 도달시키기 위한 부수적인 설명이 많은 것이고, 또 하나는 주어진 모든 일화에 공감되기는 쉽지 않고, 그렇게 되면 흥미를 잃고 책을 건너뛰며 읽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중에 공감할 일화가 있고 생각할 만한 공간을 주었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면 생니를 뻰치로 뽑아도 견딜 수 있다는 느낌의 구절이 있었는데, 그러한 깊은 수행(?)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충분히 있었고, 그 정도 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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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두 장
쌓아올린 천 개의 벽돌 중 잘못 놓인 벽돌 두 장의 의미: 사람들은 잘못된 두 장에 집중하지, 잘 쌓아 올린 998장의 벽돌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사람 마다의 특별한 점이 그러한 작은 실수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는 의미로 확장된다. 초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작은 실수일 수도 있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특별한 점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한 것은 모두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입니다. … 진정으로 생각을 쉬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세상의 일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고 생각을 멈추는 자세로서 소개되었지만, 항상 “마무리”에 미련을 가지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된다. 퇴사를 앞둔 시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일에 대해 최소한도 끝을 보겠다는 생각인데, 그것을 “책임감”이라는 그럴싸하고 남들도 인정할 만한 단어로 포장해서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과 같이 지금 손 놓아도 사실 충분히 마무리 되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것은 불안한 내 마음이다.
… 자질구레한 일들을 해치운 뒤 정원에서 잠시 평화로운 순간을 누리겠다고 마음먹는다. … 그 일들은 결코 끝이 나지 않으며, 따라서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누릴’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 ‘평화 속에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오직 무덤에 있는 이들 뿐이다.
나는 늘 평화로운 순간이 오길 기다린다. 그 순간에 휴식을 하거나, 내가 하고싶은 일에 진정 몰입하거나 하는 그런 시간을 기대한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런 순간을 한번도 제대로 맞이한 적이 없다. 늘 자질구레한 일이 생긴다. 전화가 오고, 집안일 할 것이 생기고, 늘 불평으로 마무리하게된다. 그런 완벽한 순간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야 하는 것임을 느낀다.
내려놓기
오히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바로 ‘내려놓으려는’ 그 마음이다.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문제는 화를 낼 때 우리가 화를 즐긴다는 것이다. 화에는 중독성이 있고 묘한 쾌감이 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쾌감을 주는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것
절대적으로 판단하는 것, “이것이 진실이고, 나머지 것들은 진실이 아니야.” 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나는 평소 내가 “안다”고 생각하기를 지양하는 편이다. 그것이 사실에 관한 것이라면, 내가 아는 것은 내가 관찰한 것 또는 들은 것 중에서 내가 믿기로 한 것일 뿐이고, 그것이 학문에 관한 것이라면, 내가 그 학문의 전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를 공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나의 그런 생각을 지지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작용이 따르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판단을 드러내지 않게되며, 쉽사리 본인의 판단을 드러내는 사람을 속으로 비난하게 된다는 점이다.